"涓吉이라. 신부 집에서 혼인 날짜를 택하여 신랑 집에 보내니, 신랑 집에서는 의제장(衣製狀)으로 화답하여 신랑의 품과 길이를 적어 보내느니라."
1. 연길(涓吉): 신부 집이 택한 축복의 날짜
사주단자를 받은 신부 집에서는 가문의 어른들이 모이거나 신뢰하는 학자를 찾아 신랑 신부의 생년월일과 운세를 살피고, 가장 상서롭고 맑은 날을 골라 혼인 날짜를 잡습니다. 이를 '연길(涓吉)'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연(涓)'은 물방울 연 자로, 맑고 깨끗하게 가려 뽑는다는 뜻입니다. 혼례식 날짜뿐만 아니라 혼수함을 받는 납폐(納幣) 날짜와 시간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합니다.
예를 들어 연길 단자에는 '奠雁(전안, 혼례식) 乙丑年 十月 十三日 午後, 納幣 同日隨時(납폐는 같은 날 형편에 따라 수시로)'와 같이 정갈한 붓글씨로 적어 신랑 집에 정중히 회신했습니다.
2. 연길 편지의 서식과 의미
연길 단자를 싼 봉투의 겉면 앞쪽에는 크게 '涓吉'이라 쓰고, 뒷면에는 '謹封 某貫後人 姓某(삼가 봉함, 모 본관의 후손 모 씨)'라고 기록합니다.
동봉하는 연길 편지에는 '사주단자를 받자오니 가문의 경사이옵니다. 좋은 날을 택하여 올리오니, 신랑의 의복 치수를 알려주시면 정성껏 지어 올리겠습니다'라는 정중한 요청이 포함되었습니다.
혼례 날짜를 신부 집에서 정하는 것은 고대 모계 사회의 흔적이자,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 부모의 마음을 최대한 배려했던 선조들의 따뜻한 예법이었습니다.
3. 의제장(衣製狀)과 장제회시(章製回示)
연길 편지를 받은 신랑 집에서는 감사히 날짜를 받아들이고, 신부 집의 요청에 따라 신랑의 신체 치수를 적은 종이를 보냅니다. 이것을 **의제장(衣製狀)**이라 하고, 이 절차를 **장제회시(章製回示)**라 불렀습니다.
의제장 봉투 앞면에는 '衣樣同封(의양동봉, 옷의 치수와 본을 동봉함)'이라 적었습니다.
신부 집에서는 이 의제장을 바탕으로 신랑이 입을 한복, 두루마기, 도포 등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여 정성껏 지었습니다. 옷 치수를 주고받는 것은 단순한 재봉의 과정이 아니라, 앞으로 한 평생 남편을 따뜻하게 감싸 안겠다는 아내의 헌신과 정성의 약속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