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서(婚書)는 신부에게 목숨과도 같은 신표라. 일부종사(一夫從事)의 상징으로 일생 동안 장롱 깊이 간직하였다가, 숨을 거둘 때 관 속에 넣어 함께 묻혔느니라."
1. 혼서지(婚書紙): 여인의 한평생을 지켜주는 거룩한 신표
전통 사회에서 여인에게 가장 귀하고 소중한 단 하나의 문서를 꼽으라면 단연 **혼서(婚書, 일명 예장지)**였습니다.
결혼식 전날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혼수함(납폐함)의 맨 밑바닥에 정갈하게 깔려 들어가는 이 문서는, 신랑의 아버지가 며느리가 될 신부에게 직접 써서 보내는 공식 감사 서장이었습니다.
이 혼서는 신부에게 정식 혼인을 입증하는 절대적인 신표였기에, 여인은 평생 장롱 깊은 곳에 이를 보관하다가 세상을 떠날 때 관(棺) 속에 품고 함께 묻혔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 앞에 정당한 예법을 다하여 가문에 들어온 떳떳한 아내'라는 자부심의 증거였습니다.
2. 혼서 원문과 깊이 있는 번역
혼서지의 대표적인 원문과 그 속에 담긴 문학적 정취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원문】: 伏維孟冬 尊體百福 僕之長子東塡年 旣長成未有伉儷 伏蒙 尊慈許以 令孫女旣室茲 有先人之禮謹行納幣 之儀不備伏惟 尊照 謹拜上狀
【풀이】: 엎드려 생각하건대 초겨울의 계절, 존체 만복하십니까? 저의 장남 아무개가 이미 장성하였으나 아직 배필이 없었사온데, 높으신 자애로움으로 귀한 따님을 아내로 맞이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에 선조들의 옛 예법에 따라 삼가 납폐의 의식을 행하오니, 비록 격식을 다 갖추지 못하였으나 굽어살펴 받아주시옵소서.
사돈에게 올리는 지극한 존경과 함께, 며느리를 맞이하는 시아버지의 깊은 고마움이 문장 구석구석에 묻어납니다.
3. 물목(物目) 작성과 혼서 싸는 법
혼서와 함께 함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예물의 목록을 적은 **물목(物目)**입니다.
'物目: 玄壹段(청단 한 필), 纁壹段(홍단 한 필)... 某貫後人 姓某謹拜'와 같이 보낸 비단과 패물의 품목을 정확히 기록했습니다.
혼서는 금전지가 달린 고급 검정색 비단 겹보자기에 싸서 **'謹封(근봉)'** 띠를 정갈하게 두른 뒤 혼수함의 가장 밑바닥에 정중히 안치했습니다. 그 위에 채단과 패물이 올라갔으니, 혼서야말로 혼수함 전체의 기둥이자 영혼이었습니다.